website free tracking
 

  • 축구
  • 농구
  • 야구
  • 배구
  • 기타
  • 프리뷰
  • 프리미엄
  • 해외
  • 오늘연예
  • 오늘이슈
  • 오늘유머
  • 오늘운세
  • 오늘포토

[단독] 하리수 “커밍아웃 후 20년, 사회적 편견 달라졌냐고요?”…①

작성자 정보

  • 벳프리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단독] 하리수 “커밍아웃 후 20년, 사회적 편견 달라졌냐고요?”…①


이미지 원본보기0000651691_001_20230805120301425.jpg?type=w540
하리수는 광고 한 편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2001년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카피의 화장품 광고로 데뷔한 그녀. 해당 회사는 ‘남자도 화장하면 예뻐진다’는 콘셉트에 맞춰 처음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후반부에는 남성의 목울대가 부각된 광고 영상을 내보냈다. 한국 광고 역사상 가장 파격으로 기억될 순간이다.
 
5:5 가르마에 가슴까지 오는 긴 생머리, 168cm 키에 48kg, 34-24-35 사이즈의 바비 인형 몸매,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고혹적인 눈빛의 여성의 목에서 울대뼈라니. 다음날부터 각 방송국과 광고사, 화장품 회사로 ‘도대체 광고 모델이 누구냐’는 문의 전화가 폭주했다고 한다.
 
남자 아니면 여자만 존재하던 세상. 남자로 태어나 여자의 삶을 선택한 트렌스젠더임을 당당하게 밝힌 하리수다. 하루만에 세상을 뒤집었다. 트렌스젠더라는 다섯글자를 처음 들어본 사람도 많았다. 언론은 앞다투어 하리수를 취재했고, 그녀의 이야기는 스포츠지의 1면을 도배했다.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와 만난 하리수는 데뷔 광고에 대한 비하인드를 전했다. “저는 원래 울대뼈가 없다. 그 당시 다른 사람과 합성한 모습이다”라며 “분명 은인 같은 광고지만 TV를 통해 처음 봤을 땐 정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슬퍼하기도 했다. 지금은 담담하게 말할 수 있지만 말이다”라면서 자신의 목을 쓸어내린다. 길고 곧게 뻗은 하리수의 목에 시선이 갔다.
 
이미지 원본보기0000651691_002_20230805120301449.jpg?type=w540
데뷔부터 뜨거웠던 사람, 하리수의 이름은 ‘뜨거운 논란’이라는 의미의 ‘핫 이슈(hot issue)’에서 따왔다. ‘연예인은 이름 따라 간다’는 말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생을 살았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유난히 ‘최초’ 수식어가 많다. 
 
우선 최초의 트렌스젠더 연예인이다. 때문에 그녀의 결혼과 이혼은 대중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이 역시 연예계 최초이기 때문. 가수·배우·모델·작가·라디오 DJ·개인방송 BJ에 도전할 때도 최초란 수식어는 빠지지 않았다.그녀의 인생에서 보수적인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든 최초도 있다. 데뷔 1년 만인 2002년 12월 인천지법에서 남성에서 여성으로 호적 정정을 허가받았다. 주민번호 앞자리가 2에서 1로 바뀐 것. 이름도 이경엽에서 이경은으로 개명했다. 하리수의 호적 정정은 이후 2006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성전환자 호적 정정 및 개명 인정 판례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바라던 일이 이뤄졌다. 당시 기분을 묻자 하리수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는다. “사실 데뷔 전에 문의도 많이 하고, 노력을 많이 해봤는데 법을 바꾸기란 정말 어려웠다. 그런데 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많은 사랑을 받다보니 어느 순간 수월하게 정정히 되더라”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이어 “그땐 너무 허탈했다. 그냥 이경은이라는 사람 자체가 아닌, 사회에서 인정받고 활동하는 하리수를 나라에서 인정을 해주는구나 싶었다. 좋으면서도 허탈했다”면서 “호적이 바뀌니 통장부터 주민등록증까지 바꿔야 한다고 안내 전화가 오더라. 그때 피부로 와닿았다”고 설명한다.
 
하리수 이후 각 지방 법원에서 성별 정정 판결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제도권의 변화다. 실제 하리수의 인기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TV만 틀면 하리수가 나왔다. 당시 가장 비싼 행사비를 받는 가수가 김건모였는데, 하리수가 가장 비슷하게 받는 후배 가수였다. ‘템테이션(Temptation)’, ‘라이어’(Liar) 등 히트곡을 연달아 내며 한국을 넘어 중국, 대만, 홍콩, 일본, 말레이시아에서 모셔가기 경쟁을 벌였다.
 
하리수는 “2004년에서 2005년이 전성기였다. 한 달에 행사를 40개까지 했다. 일주일에 2∼3일은 대만에서 활동하고 나머지는 한국에서 활동했는데, 하루에 1억 넘게 벌었던 적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휴식은 언제 취했냐는 질문에 그녀는 “잠은 이동하면서 자는 거다. 집은 옷만 갈아입는 곳이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모든 생활을 차 안에서 했던 시기”라는 특유의 재치있는 말로 당시를 돌아봤다. 
 
이미지 원본보기0000651691_003_20230805120301465.jpg?type=w540
청소년기에 성 정체성을 깨달았다는 그녀. 하리수로 ‘빵’ 뜨기전, 10년의 무명 시절을 거쳤다. 그래서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리수는 “10대 후반부터 이 세계에 나왔다. 드랙퀸(퍼포먼스를 목적으로 하는 여장 남자) 공연장의 막내였다. 다른 사람보다 일찍 출근해서 심부름을 하고, 분장실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는 저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자갈길을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라며 “그 시간을 겪고 나니 오갈 곳 없는 막내들을 챙기게 되더라. 저희 집에서 같이 사는 거다. 일일이 세어보진 않았지만 한 15명 이상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데리고 살았다. 10년 이상 같이 산 동생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하리수를 모르는 사람들에겐 전설처럼, 그녀의 성품을 아는 사람들에겐 당연한 이야기다. 
 
최근 BJ 풍자가 공중파와 다수의 케이블 채널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모델 최한빛이 슈퍼모델 선발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리수라는 트렌스젠더 1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호적 정정 후에도 ‘여자보다 예쁜 여자’라는 말로 소개된 하리수다. 무의식 중 편견과 선입견이 기저에 깔린 칭찬. 그런 시대를 살았다.
 
커밍아웃 후 호기심 어린 눈과 적개심, 애정 등 불특정 다수의 관심과 차별을 동시에 받아온 23년이다. 때문일까. 정당도, 정치도, 정치인들 사이에서 부대끼고 싶은 마음은 1%도 없지만 차별금지법(평등법)과 관련한 행사만큼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지난해 열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면담에서 가장 살아있는 이야기를 하는 그녀다. 우리 사회 속 소수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깊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하리수는 “고 노회찬 의원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섰을 때 찾아오셨다. 이 법안에 대한 그 분의 생각에 동의해서 함께 하게 됐다”면서 “말 그대로 불평등한 입장에 처한 분들을 차별 하지 말라는 것에 동의하는거다”이라고 입장을 내놨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법 제정을 권고해 이듬해 제17대 국회에서 정부 법안이 처음 발의됐고, 제21대 국회에 들어서는 총 4건의 차별금지법이 발의됐으나, 현재까지 계류 중이다. 하리수는 2006년부터 관련한 사회 활동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리수는 이어 “흔히 차별금지법이라고 하면 성적소수자에 대한 논의만 떠올리는데, 아니다. 노약자를 위한 법, 이주노동자와 비정규직을 위한 법, 장애인을 위한 법 등 나와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살면서 내 가족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차별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힘줘 말한다.
 
그녀는 “누구라도 차별을 당할 수 있다. 기자님도 저도 언젠가 나이가 들면 경제활동에서 자연히 멀어지는 날이 올 거다. 차별금지법은 노약자를 위한 법이기도 하다. 임신과 출산을 겪고 육아를 하며 회사에 복귀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함과 현실 속 사례도 많지 않나. 글을 읽는 독자분의 아내, 딸, 손녀가 겪을 수도 있는 일이다. 남의 일처럼 바라볼 게 아니라는 뜻이다”라며 “성별, 나이, 출신 지역, 혼인 여부, 질병, 가구 형태 등 다양한 차별 사유가 있다. 차별금지법안의 국회 발의 이후 18년 동안 논의가 지지부진한 건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짚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의 시대다. 그럼에도 하리수가 이름을 알린 2000년대 초반보단 나아지지 않았을까. 지난 20여년을 돌아봤다.
 
하리수는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20년 정도 저를 보시고 트렌스젠더에 대해 무덤덤, 무감각해진 분들이 많아진 것이지, 좋아지진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미지 원본보기0000651691_004_20230805120301487.jpg?type=w540
그녀는 “받아들이기 힘든 세대와 무지한 세대는 여전히 존재한다. 여기에 인터넷이 발달되며 새로운 혐오 세력이 생겼다. 전 성 정체성을 깨달은 17살 이후 온전히 여성으로 살았다. 신체와 정신 그리고 법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성차별에 반대한다면서 저를 공격한다”라며 “저는 내공이 쌓여 괜찮다.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해서 직접 만나본 적도 있다. 그런데 이런 공격으로 자신을 놓아버리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도 있지 않나. 차별금지법은 그래서 필요하다. 강자에 의한 차별 뿐만 아니라 약자끼리 서로 차별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619 / 150 페이지
번호
제목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