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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그 일곱번째 -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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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우깡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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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의 법칙까진 아니더라도 갑자기 여러가지 일이 한꺼번에 몰리는 날이 있다. 지난 주

나이트에서 만났던 여자와의 약속이 있더니 생각치도 않은 오랜 친구의 한잔하자는 연락…



‘혼자 먹는거 아니면 마시고 있어라. 나중에 가능하면 늦더라도 합류하마’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지만 남자는 여자와의 약속이 언제나 최우선이다. 여자와의

약속은 남자인 친구와의 선약일지라도 깨버려야 하는게 당연하다. 우정은 웬만한 풍파로

부숴지지 않지만 사랑은 너무도 연약하여 작은 미풍에도 흔들리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친절하게도 나이트 술값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저녁을 쏘겠다는 여자의 말을 거역할

정신나간 만용은 없다. 이런 건 고민할 가치가 없지…사랑이 강렬할 때 당할 수 있는

우정은 없어. 지난 번에는 가슴까지였지…비록 손안에 겨우 들어오는 아담한 크기였지만…

흐흐흐…오늘은 끝까지…



약속 장소인 목동으로 가는 가을의 차창 밖은 어스름을 넘어 밤으로 치닫고 있어 잔잔한

라운지 음악이 흐르는 차 안의 평화로움으로 어우러져 꽤나 정취있는 저녁이었다.



모 방송국 간부를 남편으로 두어 제법 먹고 살만한 여자, 입에서 나오는 단어가 정리되어

배움이 부족하지 않은 여자, 관리를 잘 받았는지 일회성 인연으로 버리기엔 아쉬운 여자,

누르고 눌렀지만 숨길 수 없는 욕망이 눈매로 보이는 여자…얻어 먹기로 한 저녁이지만

씌울 수는 없다. 나이트 술값이 부담스러우니 밥이나 사겠다는 말은 그저 유부남과 유부

녀의 자리를 만들기 위한 서로의 편한 핑계일 뿐…



‘야…웬만하면 와라. 오늘 함 달리자. 너와야 짝 맞는데…’

‘거래처 저녁식사인데…가능하면 이따 가마. 단 확정은 짓지 못하니 그건 알아두고’



여의도를 지날 무렵 사회에서 만나 우정을 나누는 또 다른 친구의 전화…이 놈들이 오늘

뭉쳤군. 그러나 어쩌냐. 나에겐 젖과 꿀이 흐르는 목동이 기다리는데…위험한 100퍼센트

수익률보다 확실한 10퍼센트 고정수익을 선호하는 내게 그게 통하겠냐…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가능성은 열어 둬야지…플랜 B 까지 갖춰진 이 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여의도를 지나 목동입구로 들어서자 퇴근시간이 그렇듯 막히기는 했지만 약속시간

까지는 괜찮은 정도…두리번 거리면 주차할 곳을 찾다가 앞에서 얼쩡거리는, 저렇게

어리버리한 차의 90퍼센트는 여성운전자인 차를 봤고, 그 차도 주차할 곳을 찾는지

움찔거리더니 이내 신축중인 건물의 차량 출입구 쪽 비어 있는 공간으로 주차를 했다.



조금만 일찍 왔으면 됐을텐데…놓쳐버린 주차공간을 아쉬워하며 조금 더 진행하자

다행히도 빈 공간이 눈에 띄어 주차를 하고 내려 신호등 쪽으로 걸었다. 조금 걷자

큰 소리로 싸우고 있는 여자와 남자가 있었다. 모습이 눈에 익었는데 저녁을 약속

했던 그녀였다. 마주하고 싸우고 있는 사람은 공사장의 인부로 보이는 남자였고 조금

더 다가가자 큰소리는 악다구니로 들렸다.



여자와 싸우는 남자라니…신사도를 발휘해야 했지만…독이 오른 여자는 무섭다.

가로수 뒤에 서서 가만히 싸우는 내용을 들어보니 공사장의 진출입로의 양쪽 공간에

그녀가 주차를 했고, 대형 공사차량의 진출입에 방해가 되니 다른데로 옮기라는

공사장 경비의 요청이 싸움의 발단이었는데 요청을 하는 방식이 ‘아줌마 차 옮겨요’라는

다소 정중치 못한 언어였고, 그에 발끈한 여자가 싸움의 핵심이었던 주차장소의 적합성

여부는 이미 날려 버리고 불쾌한 언어에 대한 반발로 변질되어 있었다.



흠…그냥 주차해도 큰 무리가 없는데 저 경비새끼가 급식에서 배식국자를 쥐고 권력의

최상층에 서있는 듯한 포스로 학생을 깔아보던 식당아줌마처럼 쥐뿔도 없는 권리의식

으로 주차를 막은 것이 그 첫번째 문제요, 둘째는 빼라면 그냥 뺐으면 별 일 아니었는데

기분이 상해 싸움질로 변모시킨 여자가 두번째 문제였다.



어따대고로…이어지는 여자의 목청 톤이 높아갈수록 그녀가 무서워졌다. 분리수거때

도끼눈을 하고 쳐다 보던 아파트 부녀회장이 떠올랐고, 조금 건드리면 길바닥에 드러

누워 악악대고 있는 시장통 아줌마의 억척스러움이 엿보였다. 가진 자들은 여유가

있어야 한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지켜고 싶어하는 것은 정말 하찮은 것들이다.

그 정도는 기꺼이 가지라고 줘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해가 없는데…



저 여자는 저기서 저 인생의 깊이에 무뎌진 손마디를 굳이 이기고 싶었을까…공사장

입구에서 그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하고 시멘트 먼지를 뒤집어 쓴 채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키면서 그가 가진 유일한 권력인 공사장 출입구의 차량 이동 경로를 지키

려는 저 작디 작은 권위를 굳이 짓밟고 싶었을까…



그대로 몸을 돌려 차에 앉았다. 저런 병신같은 싸움에는 끼고 싶지도, 이기고 싶지도,

그녀의 온갖 추접스러운 승리의 찬사를 듣고 싶지도 않았다.



‘어디냐’

‘청담동…노래방…빨리 와라’



그대로 차를 돌렸다. 그녀에게는 급한 일이 생겨 가다가 차 돌려 가고 있다는 문자만을

전한 채…청담동으로 향했다. 기분이 가라 앉았고, 지저분한 작업모를 쓴 아저씨와

다투고 있는 세련되게 차려 입은 그녀가, 나풀거리던 입술이 떠올랐다. 삶의 여유라곤

없는 여자…조그만 양보도 못하는 자기 중심적인 여자…무서운 여자…시발 재수없는

년…넌 그냥 그렇게 살아라. 난 플랜 B로 살아갈 테니…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진동으로 돌려 의자 밑에 전화기를 쳐박아 버리고, 음악을

켜자 비로소 조용해졌다. 아니…묻혔다.



청담으로 되돌아가는 올림픽대로는 퇴근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빽빽했고, 아홉시가

넘어서야 겨우 주린 배를 움켜쥐고 청담의 한 노래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건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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