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의 마누라 바꿔치기 -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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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의 마누라 바꿔치기
나에게는 동생이 하나가 있다.
엄마아빠가 나를 형이라고 부르라고 하여 형이라 부르기는 하지만 형이라고 부르기 싫어하며 친구라고 생각 하는 것이 문제이다.
왜냐고?
같은 아빠 같은 씨를 가지고 같은 엄마의 뱃속에서 자라다가 태어났지만 같은 뱃속에서 함께 자랐고 겨우 나보다 10분 늦게 태어났다고 나를 형이라고 하는데 댁들 같으면 겨우 10분 먼저 태어난 나를 형이라고 쉽게 불러 질 것 같으냐?
하지만 어쩌겠냐?
10분이 아니라 1분을 일찍 태어났어도 태어 난 것은 맞으니 여기서 당연히 나를 형이라고 호칭은 쓰겠다.
우리 쌍둥이 형제는 일란성으로 엄마아빠도 어떨 때는 혼돈스러워 하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로 너무 닮은 것이 문제이다.
그 한 예로 나와 동생은 한 날 한 시에 결혼식을 합동으로 올렸다.
평소에는 남들이 잘 알아보도록 나오 동생은 같은 옷을 입지 않는다.
결혼식을 하게 되는 날이면 하나같이 검정 턱시도에 하얀 남방 그리고 나비넥타이를 맨다.
결혼식 당일 신랑은 신부와 달리 식장 앞에서 부모님들과 함께 하객을 맞이한다.
그런데 나와 동생이 같은 옷을 입고 있다 보니 나의 장인장모님께서 동생에게 사위라고 다가와 말을 걸고 동생 장인장모님도 나에게 와서 자기 사위인 줄로 착각하고 이 서방이라고 불렀을 정도였고 신부들의 친구들은 더욱더 혼란스러워하며 누가 누구의 신랑인지 헷갈려 하여 한동안 식장 앞에서는 웃음을 끊기지 않았을 정도였다.
각설하고
사실 대한민국이 동생은 싫다고 한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구미 각국에서는 태어난 순서가 아니라 수태를 한 순서이기에 자궁 안에 더 깊숙이 안착을 하여 먼저 수태를 한 사람을 자기라고 하여 나 같은 놈을 동생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수태라는 조건보다는 세상에 먼저 나와 빛은 먼저 본 놈을 우선으로 하는데 좋아 할 리가 있겠는가.
하여간 그 문제는 나중에 이야기를 더 하기로 하고 나와 동생의 성장 과정부터 먼저 이야기를 하기로 하자.
나의 경우 성격이 아주 활달한 정격을 가지고 있다.
유치원부터 대학에 입학을 할 때까지 남자 친구는 물론이고 여자 친구도 엄청 많았다.
어른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이나 형 누나들의 말까지도 나는 동생하고는 전혀 달리 아주 잘 들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는 물론이고 학교나 이웃들에게도 나는 매 번 사고를 치는 반면 동생은 매일같이 칭찬을 들었을 정도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나 때문에 우리 엄마가 이틀이 멀다하고 학교에 불려갔고 동생의 경우 너무나 얌전하여 엄마나 사람들은 나더러 동생 반만 따라 해도 원이 없겠다고 했을 정도로 나는 사고뭉치에 말썽꾸러기로 소문이 나 있을 정도였다.
거기다가 공부는 어떻고
나의 경우 고등학교 이학년 까지 꼴등 권에서 벗어 난 적이 없었고 동생의 경우 고등학교 이학년 까지만 하여도 상위 십 위권을 벗어난 적이 없었던 애였다.
또 동생의 경우 고등학교 이학년 말에 가서야 겨우 여자 친구가 생겨서 키스라는 것을 하게 된 반면 형인 나는 이미 한 초등학교 육학년 때부터 여자 친구가 있었고 그때부터 이미 못 된 짓을 하고 다녔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동생은 결혼을 하기 일 년 전에 지금의 제수씨를 다시 만났고 그도 고등학교 이학년 때 처음으로 여자를 알게 된 동생에게 첫 여자였으며 동생을 찬 사람이 제수씨였고 제수씨를 만나면서 제법 활동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각설하고 먼저 나의 여성 편력에 대하여 먼저 이야기를 하겠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나의 경우 이미 초등학교 때 동정을 없애버렸다.
누구에게?
후후후 놀라지 마라.
단독주택이었던 우리 집에 세 들어 살던 새댁 부부가 있었는데 그 새댁에게 나는 동정을 받쳤다.
당시 우리가 살던 집은 이층 건물로 일층은 방 네 개에 부엌 세 개로(하나는 방 두 개에 부엌 하나였음)이루어진 전형적으로 세를 받아먹기 위하여 목수였던 우리 아빠가 직접 지은 집으로서 일층은 모조리 달세를 받아 엄마의 생활비로 썼고 이층에는 방 두 개와 거실을 사용하면서 우리 가족이 살면서 우리가 사는 공간에서 나와 모퉁이를 돌아가면 거기에도 방 하나에 부엌 하나로 이루어진 공간이 있었는데 거기에 새댁 부부가 살았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요즘 초등학교에서도 숫처녀와 동정을 지닌 남자 애들이 귀하다고 할 만큼 초등학교 때부터 성에 대한 호기심은 아주 많다.
초등학교 오학년이던 나도 호기심이 말 그대로 정말로 많았다.
새댁 부부는 내가 오학년에 올라갔던 그해 봄에 결혼식을 하였다.
물론 연애결혼이었고 결혼 전부터 이미 빠구리를 하였던 사이였다.
그런 새댁이 옥상 슬래브에 작열하는 밑의 방에 살다 보니 한 여름 뙤약볕이 작열하는 더위를 이기지 못 하고 거의 한 시간마다 부엌에서 알몸으로 물을 덮어쓰는데 그 물을 덮어쓰는 소리는 나의 말초신경을 자극하였고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난 새댁이 물을 덮어쓰는 소리만 나면 부엌 문 앞에서 문틈으로 새댁의 알몸을 구경하는 것이 취미가 되어버렸다.
“읖푸!”그날도 문틈에 눈을 대고 훔쳐보는데 갑자기 새댁이 물 한 바가지를 내 눈에 정확하게 겨냥을 하고 뿌린 것이다.
“드르륵 너 동근이지?”찢어지는 것 같이 앙칼스런 목소리와 함께 부엌문이 벌컥 열렸다.
“..............”꼼짝 없이 걸려 든 것은 물론이지만 반대로 문틈으로만 보아오던 새댁의 알몸을 나는 두 눈으로 보았다.
“들어오고 문 닫아 어서”나를 째려보며 명령을 하였다.
“.............”꼼짝 없이 죽었구나 하고 부엌으로 들어가며 부엌문을 닫았다.
“그렇게 아줌마 알몸이 보고 싶었니?”부엌문을 닫자 새댁의 말투가 완전하게 변하였다.
“...............”놀라웠지만 아무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봤으면 너도 보여 줘야지”아줌마가 상상도 하지 못 한 말을 하였다.
“예?”토끼눈을 하고 아줌마와 아줌마의 물에 젖은 털에서 떨어지는 물을 번갈아보며 대답을 하자
“어서 벗어 어서”아줌마가 다시 앙칼진 목소리로 명령을 하였다.
“예”하고 나는 풀 죽은 목소리를 대답을 하며 바지를 내렸다.
“호호호 꼴에 남자라고 아줌마 보지를 보고 꼴리더냐?”아줌마가 나의 고추를 보고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하였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호호호 이 좆도 물이 나오니?”아줌마가 나의 고추를 좆이라고 말하며 뻣뻣하게 선 좆을 손가락으로 잡으며 물었다.
“..................”난 아줌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멀뚱멀뚱하게 아줌마에게 잡힌 좆을 내려다보고 있자
“너 딸딸이 안 치니?”아줌마가 나의 좆을 잡고 흔들며 말하기에
“배운지 얼마 안 되었어요”하고 말하자
“물은 나오고?”흔들며 물었다.
“예”하고 대답하자
“호호호 그래 너 빠구리가 뭔 줄 아니?”아줌마가 갑자기 타월로 물기를 닦으며 물었다.
“이걸 여자 거기에 넣고 하는 것 말이죠?”본 적은 전혀 없었지만 이웃의 형들에게 들었던 적은 있어 묻자
“호호호 듣긴 들었나 보군 해 보고 싶니?”마른 타월로 가랑이의 물기를 닦으며 물었다.
“모.....몰라요”하고 대답을 하면서도 난 어린 나에게 그런 행운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 하고 어떻게 하던 아줌마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방으로 들어와”몸의 물기를 닦은 탓에 축축해진 타월을 자신이 몸을 담갔던 커다란 고무 통에 던져 넣으며 퉁명스럽게 말하기에
“예?”다시 놀란 토끼눈을 하고 되묻자
“호호호 부엌에서 빠구리를 하겠다는 것이니?”아줌마 입에서 놀라운 말이 나왔고 난 그때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였지만 아줌마의 명령을 거부를 할 수가 없었다.
“옷 모조리 벗고 누워”방안으로 들어서자 아줌마가 다시 명령을 하였다.
“예”거절을 할 이유가 없었기에 난 서둘러 바지와 팬티 그리고 티를 벗어 알몸이 된 후에 방바닥에 누워서 아줌마의 다음 행동을 숨 죽여 지켜보았다.
“후후후 작지만 이것도 좆은 좆이지 동근아 잘 봐 여기 이 구멍으로 넣는 거야 아~흑”아줌마가 가랑이를 벌리고 내 몸 위로 오더니 한 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또 한 손으로 나의 좆을 잡더니 처음으로 자세하게 보이는 구멍으로 넣으며 신음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의 좆을 아줌마의 보지구멍에 넣기는 넣어졌지만 조금 따스하다는 느낌 말고는 전혀 없었다.
솔직히 말하여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좆을 쥐고 흔드는 것이 기분이 더 좋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제 넣은 구멍이 어딘지 알았지?”아줌마가 좆을 보지구멍에서 빼고 말하였다
“예"하고 대답을 하자
“그렇다면 이지부터 동근이 네가 나처럼 올라와서 해 봐”하고 말하더니 내 옆에 누웠고 그리고 나를 자기 몸 위로 끌어 올렸다.
“보지에서 빠지지 않게 천천히 넣고 빼”그리고 손을 밑으로 내리는가 싶더니 다시 나의 좆을 잡고 자기 보지구멍에 넣어주고 말하였다.
그때는 처음과 달리 보지구멍에 좆을 박은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그 새댁 부부가 이사를 간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새댁은 처녀시절에 술집에서 일을 하였고 단골손님이었던 남편을 만나서 술집 생활을 그만 두고 결혼을 하였던 것이었으며 나의 가늘고 짧은 좆이 보지구멍에 들어와도 보지구멍에 힘을 가하여 수축력을 주어 나의 좆도 물다 시피 하여 처음과 달리 보지구멍에 좆을 박은 느낌이 들도록 만들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난 새댁 아줌마의 훌륭한 가르침에 따라 펌프질이란 것을 열심히 하였고 그리고 나의 좆 물을 변기와 휴지가 아닌 여자의 몸에 처음으로 분출을 함으로서 나의 동정은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그 후로도 난 새댁 아줌마가 아저씨의 직장을 따라 지방으로 갈 때까지 수도 없이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며 충실한 노리개 노릇을 해 주었다.
그렇게 보지 맛에 길들여진 나에게서 보지구멍이라는 것은 멀어 질 수가 없은 물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의 짧은 역사 속에서 여자라는 존재가 없었던 때는 거의 없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내 옆에서는 여자가 떨어지지 않았고 고등학교에 가서도 이학년 말까지 나의 주변에서 여자라는 존재는 없었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이학년 말에 나에게 아주 큰 변화가 생겼다.
지금 내 마누라가 된 여자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 만남도 아주 묘하게 이루어졌다.
나의 쌍둥이 동생에게 난생처음으로 여자 친구가 생겼고 동생의 여자 친구와 짝이 되어서 어울리던 여자에게 내가 반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여자 맛에 길들여진 나에게 그녀는 소위 말하여 줄 듯 말 듯 하였고 그녀의 줄 듯 말 것 같은 행동은 나의 속을 타게 만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 마디가 나의 인생에 변화를 주었다.
내가 소위 명문 대학이라고 하는 00대학교에 입학을 하고 자기도 같은 대학에 입학을 하면 아낌없이 자기의 처녀를 나에게 주겠다고 말이다.
그녀의 그런 제의는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초등학교 오학년 때부터 보지의 맛을 알게 되었지만 날라리 근처에 숫처녀가 없고 동정이 없듯이 그렇게 잘 나가던 내 곁에는 여자들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숫처녀의 맛을 한 번도 보지 못 하였기에 난 그녀가 숫처녀라는 말에 난생처음으로 숫처녀 맛을 기어코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에서 여자들을 멀리하게 되었고 결국은 처음으로 여자가 내 곁에 없게 된 것이다.
대신 그렇게 멀리하였던 책을 보기 시작하였다.
반면 여자와 처음 접한 10분 터울의 동생은 나와 정 반대였다.
10위권 밖으로 떨어지지 않던 녀석의 성적이 점점 떨어졌다.
난 녀석의 성적이 처지는 것을 알고 자기 여지 친구와 빠구리를 즐기고 또 빠구리에 바져서 헤어 나오지 못 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엄마아빠의 칭찬은 나에게로 돌아왔고 꾸지람은 동생의 목이었다.
그렇게 일 년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책과 시름을 한 끝에 난 동생의 여자 친구와 짝이었던 지금의 내 마누라가 요구한 대학에 입학을 하였고 동생은 나보다 훨씬 하류의 대학에 그도 간신히 입학을 하였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고 이 년 후 동생의 여자 친구는 동생이 다니는 대학에 입학을 한 반면 나와 처녀를 주겠다고 약속을 한 지금의 마누라는 나와 같은 대학에 무난히 입학을 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대학 입학식을 한 후 한 달